초록색 운동복과 분홍색 경비원, 어린이 놀이를 뒤집은 잔혹한 규칙. 이제 너무 익숙해진 ‘오징어 게임’의 이미지가 다시 한 번 세계 TV 역사 속 자리를 확인했다. 뉴욕타임스가 전 세계 배우와 쇼러너, 제작진, OTT 임원 등 업계 관계자 500여 명의 투표를 모아 발표 중인 ‘21세기 최고의 TV 시리즈 100’에서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이 72위에 올랐다. 단순한 인기 차트가 아니라 2000년 이후 시작한 작품 가운데 각 투표자가 최고라고 생각한 10편을 고른 결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뉴욕타임스는 이 작품을 자본주의가 인간성을 앗아가는 피의 스포츠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품은 한국 스릴러로 소개했다. 거칠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만큼이나 초록색 운동복, 놀이공원 같은 공간, 참가자들 사이의 씁쓸한 갈등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화려하고 잔혹한 장면 뒤에 빚과 불평등, 생존 경쟁이라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불안을 놓았기 때문에 한국의 지역적 이야기에서 세계적 화제로 번질 수 있었다는 설명과도 맞닿는다. 유튜브 최고경영자 닐 모한이 이 작품에 표를 던진 인물로 공개된 점도 흥미롭다.
‘오징어 게임’은 2021년 첫 시즌을 시작으로 2025년 시즌 3까지 이어졌다. 성기훈 역의 이정재를 중심으로 456명의 참가자가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목숨을 건 놀이에 뛰어드는 설정은 공개 직후 전 세계적인 유행을 만들었다. 시즌 1은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미국 에미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세 시즌 모두 넷플릭스 비영어권 역대 인기 시리즈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번 순위는 흥행 기록에 업계 동료들의 선택까지 더해졌다는 의미가 있다.
한 계단 위인 71위에는 이성진 감독의 ‘성난 사람들’ 시즌 1이 자리했다. 사소한 도로 시비가 통제할 수 없는 충돌로 커지는 이 작품 역시 아메리칸드림의 균열과 분노를 파고든다. 한국 창작자와 한국계 배우들이 활약한 두 작품이 나란히 놓인 장면은 K콘텐츠의 성과를 장르적 유행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뉴욕타임스는 남은 순위를 순차 공개해 25일 1위를 발표할 예정이다. ‘오징어 게임’보다 위에 어떤 작품들이 자리할지, 그리고 이 작품의 72위가 최종 목록 안에서 어떤 흐름을 만들지도 마지막까지 지켜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