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거의 끝나가던 9회초, 샘 힐리어드의 방망이가 홈런왕 경쟁의 온도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KT 위즈가 SSG 랜더스에 4-2로 앞선 2사 만루에서 힐리어드는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그랜드슬램을 터뜨렸다. 점수는 순식간에 8-2로 벌어졌고, 팽팽하던 승부는 그 한 방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더 눈길을 끈 숫자는 시즌 38호다. 홈런 선두 김도영이 40개, 오스틴 딘이 39개를 기록한 상황에서 힐리어드가 한 개 차까지 따라붙었다. 불과 사흘 전 두산전에서 37호 솔로포를 친 데 이어 또다시 담장을 넘겼다. 9월에만 8홈런을 몰아친 가파른 상승세라 시즌 막판 홈런왕 경쟁은 이제 세 사람 중 누구도 마음을 놓기 어려운 구도가 됐다.

이날 KT의 출발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회 최원준의 2루타와 진루타로 먼저 점수를 냈지만, SSG가 3회 에레디아의 적시타로 균형을 맞춘 뒤 6회 오태곤의 적시타로 2-1 역전에 성공했다. KT는 7회 권동진과 김민혁의 연속 적시타로 다시 3-2를 만들었고, 9회 상대 실책으로 한 점을 보탠 뒤 힐리어드가 마지막 문을 닫았다. 단순히 개인 기록을 하나 늘린 홈런이 아니라 팀의 불안한 리드를 확실한 승리로 바꾼 쐐기포였다.

힐리어드의 질주는 팀 순위와도 맞물린다. KT는 이 승리로 3연승을 달리며 단독 선두를 지켰고, 2위 삼성과의 격차도 3.5경기로 유지했다. 한국시리즈 직행을 향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중심타자가 연달아 장타를 터뜨리고 있다는 뜻이다.

남은 경기 수 역시 흥미롭다. 힐리어드는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김도영보다, 오스틴보다도 한 경기를 더 남겨두고 있다. 홈런 두 개 차이는 한 경기에서도 뒤집힐 수 있는 간격이다. 9월의 몰아치기가 마지막 경기까지 이어진다면, 38호 만루포는 단순한 쐐기점이 아니라 2026년 홈런왕 경쟁을 바꾼 장면으로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