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이 아니라 볼넷 하나가 역사적인 순간의 문을 열었다. 시카고 컵스의 피트 크로암스트롱은 25일 한국시간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전 1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볼넷을 골랐다. 그리고 다음 타자를 상대로 곧바로 2루를 훔쳤다. 전날까지 45홈런과 39도루를 기록했던 그에게 바로 이 도루가 시즌 40번째였다. 전광판에 기록이 뜨자 관중석에서는 MVP를 외치는 함성이 이어졌다.

이로써 크로암스트롱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일곱 번째 40홈런-40도루 주인공이 됐다. 컵스 유니폼을 입고 이 기록에 닿은 선수는 그가 처음이다. 호세 칸세코를 시작으로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알폰소 소리아노,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오타니 쇼헤이가 먼저 이름을 올린 짧은 명단에 24세 중견수의 이름이 새로 들어갔다.

숫자를 뜯어보면 더 놀랍다. 크로암스트롱은 이번 시즌 45개의 홈런을 날리면서도 47번의 도루 시도 가운데 40번을 성공시켰다. 한 시즌 45홈런 이상을 친 컵스 타자 자체가 드물었고, 왼손 타자로는 빌리 윌리엄스가 1970년에 세운 구단 기록 42홈런도 넘어섰다. 지난해에도 30홈런-30도루를 달성했던 그는 두 시즌 연속 장타와 스피드를 동시에 보여주며 단순한 한 해의 반짝 기록이 아니라는 점까지 증명했다.

개인 기록과 팀의 축제가 같은 날 겹쳤다는 점도 극적이었다. 컵스는 매슈 보이드의 7이닝 1실점 호투와 스즈키 세이야의 홈런을 앞세워 마이애미를 2대1로 꺾었다. 시즌 88승 71패가 된 컵스는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한 자리를 확보하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연속 가을야구에 나선 뒤 처음 맞는 연속 진출이다.

크로암스트롱의 가치는 홈런과 도루에만 머물지 않는다.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중견수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왔고, 올해는 공격력까지 폭발하며 내셔널리그 MVP 경쟁의 중심에 섰다. 정규시즌 막판 마지막 도루 하나가 개인의 이정표와 팀의 가을 티켓을 동시에 완성했다. 컵스 팬들이 그의 이니셜을 외치던 리글리필드의 함성이 이제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