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바뀌었지만 주장 완장의 주인은 그대로다. 로베르트 모레노 한국 축구대표팀 임시 감독은 첫 A매치를 앞두고 손흥민에게 계속 주장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새 체제라면 리더십부터 손볼 수도 있었지만, 모레노의 선택은 변화가 아니라 기존 방식의 존중이었다.
모레노는 자신이 손흥민을 새롭게 주장으로 뽑은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제 막 부임해 선수들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체제를 바꾸는 건 성급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출전과 소집 경력을 기준으로 주장을 정했고, 클럽에서는 선수 투표가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며 팀마다 리더를 정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짚었다.
손흥민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서 기성용의 부상으로 처음 주장 완장을 찬 뒤 오랫동안 대표팀의 얼굴이자 리더 역할을 맡아왔다. 북중미 월드컵까지 두 대회 연속 주장을 맡은 첫 한국 선수라는 기록도 남겼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후 세대교체와 새 주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만한 시점이었지만, 단기간에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임시 감독에게 급격한 리더십 교체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손흥민도 완장의 무게를 숨기지 않았다. 월드컵 기억이 아직 고통스럽다면서도 팬들의 마음을 다시 돌리는 일은 결국 선수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열정과 간절함을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취재진과 선수단 사이에 생긴 갈등을 두고도 서로 존중하며 얼굴 붉힐 일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모레노가 손흥민 한 명에게만 특별한 관계를 약속한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선수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과정이 전술과 요구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주장 체제는 유지하되 새 감독과 선수단의 유대는 처음부터 다시 쌓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첫 시험대는 24일 에콰도르전이다. 대표팀은 9월과 10월 에콰도르·우루과이·베네수엘라·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4연전을 치른다. 완장은 그대로지만 분위기와 경기력까지 그대로일 수는 없다. 모레노가 기존 질서를 안정판으로 삼아 얼마나 빠르게 자신의 축구를 입힐지, 손흥민이 팬들의 마음을 돌리겠다는 약속을 어떤 장면으로 보여줄지가 이번 새 출발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