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단단한 목소리를 들려온 김윤아가 자신의 음악을 움직여 온 가장 어두운 힘을 꺼냈다. 지난 20일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시대목격’에서 그는 어린 시절 생부에게 가정폭력을 당했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피해자였다고 밝혔다. 자우림으로 29년 동안 노래해 온 뮤지션의 고백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그의 음악에 반복해서 등장한 불안과 고통의 출발점을 직접 설명한 장면이었다.

김윤아가 떠올린 어린 시절의 감각은 평범한 추억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이야기가 시시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자신은 매일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분으로 살았고, 언제 또 사건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설거지를 하다 비누를 덜 닦았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는 구체적인 기억도 털어놨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증오’를 말하는 방식이었다. 김윤아는 생부가 세상을 떠난 뒤, 평생 증오하며 음악을 만들었던 대상이 사라져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는 “증오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증오는 가장 강한 힘이 된다고 답했다. 상처를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쉽게 용서의 서사로 바꾸지 않은 말이라 더 선명했다.

그는 이 경험을 부끄럽거나 감춰야 할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오히려 같은 피해를 겪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일이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상처를 지우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에게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이번 방송은 김윤아의 29년 음악 인생과 그가 노래를 통해 건넨 공감과 위로를 함께 돌아봤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음악으로 다루는 일조차 스스로 의심하며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고백은 ‘강한 가수’의 비밀을 찾는 이야기라기보다, 고통을 언어와 노래로 바꾸면서도 그 과정의 윤리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한 창작자의 기록에 가깝다. 오래 들었던 노래들이 이번 장면 뒤에는 조금 다르게 들릴지도 모른다.